상영작
봄이 오면ㅣ김경민ㅣ18분48초ㅣ2019
높이뛰기ㅣ김진유 ㅣ19분40초ㅣ2013
일시 : 2020.10.13 (화) 19시
모더레이터 : 안솔미 지음 회원
녹취 :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
장소 : 한낮의 바다
안솔미 (이하 ‘모더’)
안녕하세요, 씨네마실 모더레이터를 맡은 안솔미입니다. 강릉 글쓰기 모임 ‘지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음은 강릉 독서 모임 ‘이음’에서 파생했는데요, 독서 모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에도 흥미가 생겨서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현재 다양한 직업군의 회원 20여 명이 한 달에 한 번 주제를 정해 시, 소설 수필 등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낮의 바다’는 제가 정말 애정하는 공간이에요. 이렇게 예쁜 공간이 강릉에 생겨서 너무 좋습니다. 한낮의바다가 오랫동안 강릉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기회에 한혜숙 서점 지기님께 전해봅니다. 애정하는 공간에서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모더레이터를 맡는 기회를 주신 인디하우스에도 감사 인사 전합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인 감독님들을 만나볼까요? <봄이 오면>의 김경민 감독님, <높이뛰기>의 김진유 감독님을 자리로 모셨는데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경민
<봄이 오면>을 연출한 김경민입니다. 현재 행정직으로 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교사이기도 합니다.
김진유
<높이뛰기>를 만든 김진유라고 합니다. 최근 <나는 보리>라는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모더
원래 싸네마실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생긴 질문이나 느낀 점을 감독과 직접 이야기하는 자리로 마련됐는데요, 코로나19 때문에 관객들과 함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제가 관객을 대표해서 감독님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저는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제목’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먼저 김진유 감독님께 질문할게요. <높이 뛰기>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김진유
원래는 제목을 <18>이라고 지었어요. 세상을 향해 욕하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제목으로 단편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응모해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제목으로는 지원사업에 응모하기가 좀 애매했죠.
영화는 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좀 순화된 제목을 고민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높이뛰기를 하면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고,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경험을 생각하며 영화에 <높이뛰기>라는 가제를 붙여뒀죠. 그런데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지 못했고, 또 <높이뛰기>란 제목이 영화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가제가 진짜 영화 제목이 됐죠.
모더
이 자리에 관객분들이 함께 있었다면 <높이뛰기>라는 제목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묻고 싶었어요. 저는 주인공 ‘후’가 미래에 높이 뛰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추측도 해봤는데(웃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김진유
사실 큰 의미는 없었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로 이해하더라고요. 제목의 의미는 관객의 해석에 맡기겠습니다.
모더
김경민 감독님께도 여쭤볼게요. <봄이 오면>이란 제목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김경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태윤’이 ‘봄이 오면’이란 노래를 부르는데, 영화 속에서도 의미가 있는 노래예요. 그래서 영화 제목을 ‘봄이 오면’으로 짓게 됐어요.
또 다른 하나는 태윤이가 어른이 돼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유년 시절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봄이 오면>이라고 지었어요. 저도 처음엔 영화 제목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정했었거든요. 지금은 태윤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나중에 태윤이가 성인이 되어서 이 영화를 이해하는 순간이 왔을 때 당시를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희망이 담긴 제목으로 바꾸게 됐죠.
모더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태윤이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김경민
촬영 당시 태윤이가 음악 시간에 가창 시험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가 ‘봄이 오면’이었어요. 태윤이가 부모님과 친구들 도움을 받아 아주 오랫동안 연습해서 가창시험을 봤는데, 결과적으로 잘 못 불렀어요(웃음). 되게 낮은 점수를 받았죠. 그런데도 학기 말 즈음에는 기분 좋을 때, 뭔가에 집중할 때 그 노래를 흥얼거리더라고요. 이 노래가 태윤이와 부모님에게도 의미가 있는 노래가 된 것 같았어요.
모더
<봄이 오면>의 주인공 태윤이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예요. 김경민 감독님은 교사 일도 병행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더 장애-비장애 학생 통합 학급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적격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통합학급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김경민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서 같이 생활하는 학급을 ‘통합학급’이라고 해요. 예전에는 장애 학생들을 분리해 따로 학급을 편성하거나, 아예 특수학교에 진학시키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앞으로 다문화 가정 학생이나 학습 부진 학생 등 다양한 학생이 같은 학급에서 생활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쪽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모더
제가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며칠 전 독서 모임에서 김지애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서 통합학급과 관련된 토론을 했었거든요. 장애 학생을 특수학급으로 분리해서 교육해야 한다는 쪽과,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해서 교육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어요. 감독님께서는 이런 외부 시선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덧붙여 감독님께서 통합학급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민
대학 초년생부터 이 주제로 토론 수업도 하고, 꾸준히 고민했는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을 통합해 교육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지금 교육 현장에서 비장애-장애 학생 통합교육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러나 궁극적 종착지는 통합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 같이 어울려 지내려면 기존의 시스템들도 좀 더 여유롭고 유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학교 교육이 수능이라는 입시교육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지만, 큰 방향은 통합교육으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척중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자폐성 장애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어요. 3학년 학생이었는데, 태윤이 보다는 자폐 정도가 낮은 친구였어요. 그런데도 모든 수업에서 배제된 상황이었죠. 당시에 그 친구를 소재로 간단한 영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 친구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자폐 학생을 지켜보면 행동 자체가 독특해서 본의 아니게 오해받고. 소외되고, 내팽개쳐지는 순간들이 많더라고요. 자폐 학생이 특이 행동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런 걸 보며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보면 대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봄이 오면>도 그런 마음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더
이번엔 김진유 감독님께 질문드릴게요. 영화를 보면서 어린 배우들의 연기가 참 인상 깊었어요. 초반에 후가 길에서 자동차를 뛰어넘는 장면이나 엄마를 대신해 복수하기 위해 물총에 오줌을 넣어 옷 가게에 쏘는 장면 등 디테일한 연출들이 돋보였는데, 이게 자전적 경험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장면이라고 느꼈거든요.
김진유
자동차를 밟는 건 어렸을 때 했던 행동들이고요(웃음). 오줌 넣은 물총을 옷 가게에 쏘는 장면은 실제로 하진 못했어요. 영화에서라도 어릴 적 느꼈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나봐요. <나는 보리>라는 영화에도 옷 가게 장면이 나와요. 거기선 주인공이 다른 행동으로 복수해요.
모더
<높이뛰기>에서 주인공은 비장애인이고 주인공의 어머니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 옷 가게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옷 가게 사장이 점원한테 (주인공의 어머니에게) ‘5000원 더 받아’라고 말하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장면에서 너무 속상했거든요. 이런 에피소드도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건가요?
김진유
실제로 겪은 일이고, 그 경험이 한동안은 기억 속에 없었어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공부하며 본 책에서 ‘어렸을 때 기억을 되짚어 정리해보라’는 대목을 읽었어요. 그 대목에서 옛 기억이 떠올랐죠. 처음엔 그 옷가게 에피소드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단편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지원하게 되면서 이야기를 확장했습니다.
모더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어요.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담은 무심한 태도나 말이, 그들에게는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장애인에겐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후의 어머니는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어린 ‘후’에게는 상처가 크게 남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진유
그냥 먹고 살다 보니 생기는 일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저도 성인이 되면서 옷 가게 아르바이트도 해봤는데, 보세 옷 가게에선 제품 가격이 책정되어 있진 않잖아요. 그래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벌어지는 헤프닝이 아닌가 싶은 거죠. 영화에서 옷 가게 종업원이 어머니에게 거스름돈으로 1000원을 더 주는데, 이 장면에 대해 윤미래 감독님이 쓰신 글을 봤어요. 윤 감독님은 종원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5000원을 더 받은 데 가책을 느껴서 자기가 부른 가격에서 다시 1000원을 깎아준 게 아닐까, 하고 쓰셨어요. 이 글에서 또 다른 시선이 느껴졌거든요. 내가 판단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사실 그런 것들 때문에 <높이뛰기>를 만들 수 있었고, 감독이 될 수 있었다고 봐요.
모더
그 장면에서, 어머니가 거스름돈이 1000원 더 온 걸 알고 돌려주려고 하잖아요. 거기서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윤미래 감독님 글처럼 종업원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1000원을 의도적으로 더 준 것이라는 시선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습니다.
이번엔 영화 제작에 관해 여쭤볼게요. 배우들은 어떻게 섭외하셨나요?
김진유
주인공인 ‘후’를 연기한 친구는 ‘고수호’ 라는 배우예요. 그 친구는 평창에 있는 아동 복지기관에 사진 수업을 하러 갔다가 만났어요. 원래 연기를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연기 한번 해볼래?’ 하고 시나리오를 건네줬어요. 그 친구가 생각해본다고 하고는 한 달 동안 답이 없었는데, ‘저 할게요’라고 답이 왔죠. ‘수호’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는 아이 같았어요. 그런 상처를 영화 속에서 해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호를 캐스팅했습니다.
후의 어머니 배역은 독립영화에서 어머니 역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 중심으로 찾았어요. 그러다 주변에서 이상희 배우를 추천받았어요. 이상희 배우는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라고 불리거든요. 저도 이상희 배우가 아니면 답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이상희 배우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표정에서 청각 장애인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묘한 표정이 보이더라고요. 멍한 표정과 넋이 나간 표정의 중간 정도랄까.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그가 하는 말을 파악하려고 집중할 때 나타나는 표정인데, 그게 이상희 배우 얼굴에서 보였어요. 그래서 바로 섭외했죠.
후의 친구 중 한 명은 강릉 사는 지인의 아들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때마침 강릉으로 놀러 온 지인의 아들이었어요. ‘어, 같이 하면 되겠다’ 싶어서 캐스팅했고, 그 친구들 셋이 만나 아주 재미있게 촬영했죠. 배우들 부모님도 너무 좋아해 주셔서 잘 찍을 수 있었습니다.
모더
“야 뭐해”라는 대사를 던지는 배우도 있죠(웃음).
김진유
그 친구 이름이 ‘최무웅’인데, 사실 후 배역으로 제작진 사이에서 거론됐어요. 강릉에 살고 있어서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무웅이랑 대화를 하거나 대사를 읊게 해보면 뭔가 ‘한 끗’이 아쉬운 거예요. 고민하고 있을 때 수호가 ‘역할을 맡겠다’고 답을 준 거죠. 그래서 무웅이한테 ‘미안한데,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어’라고 했더니 ‘그래도 영화에 나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무웅이를 어떤 인물로 등장시킬지 고민하던 중, 마침 어떤 장면에서 개그 포인트를 주는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야, 뭐해” 캐릭터를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개그에는 실패했죠(웃음). 처음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보니까 좀 서툴렀던 것 같아요. 개그 포인트를 살리려다 뜬금없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모더
전 그래서 더 재밌었어요(웃음).
김진유
뜬금없는 재미를 의도하긴 했는데, 의도했던 것만큼 잘 살리진 못했던 것 같아요. 연출자로서 생각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죠.
모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최무웅 배우 배역 이름이 ‘행인’ 이런 게 아니라 ‘야뭐해’로 나와서 참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그 역할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김경민 감독님께 질문할게요. 이번 영화 전에도 자폐가 있는 친구를 지도해 본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태윤이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경민
태윤이는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예요. 키도 184~5cm 정도로 저보다 큰 훤칠한 친구인데, 아기처럼 행동할 때도 있고요. 사실 자폐가 있는 아이 중엔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뭔가 억눌린다고 느끼거나 소통이 잘 안 될 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는데, 태윤이는 그런 적이 전혀 없어요. 자폐성이 높은 편인데도 무척 온순해요.
태윤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봄이 오면>을 만들려고 태윤이 어머니께 이메일로 기획안을 보내드렸어요. 장애 학생 부모님들께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참 어렵거든요. 어쭙잖게 영화를 만들어서 논란거리를 만들 수도 있고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한 달 넘게 답을 안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실수했나 보다, 싶었는데 다행히 나중에 ‘(다큐멘터리) 만들어보세요’라고 답장이 왔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인터뷰이로 참여한 학생들은 따로 모집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인 걸 학생들이 알고 있어서, ‘인터뷰할 친구들은 모여라’하고 신청을 받았어요. 어떤 학급은 전체 24명 중 13명이 인터뷰이로 참여했어요. 교내 영상 촬영 동아리가 있는데, 그 아이들한테 마이크랑 카메라를 다 맡기고 인터뷰를 진행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 건진 게 몇 명 안 되더라고요(웃음). 영상에 목소리와 모습이 잘 잡힌 친구들만 영화에 등장하게 됐습니다.
모더
혼자 이 많은 영상을 어떻게 찍으셨을까 궁금했는데 학생들이 도왔군요. 태윤이에게도 그렇겠지만 촬영에 참여한 학생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게 일상에서 체험하기가 쉽지 않은 경험들이잖아요.
지금부터는 ‘소통’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우선 <봄이 오면> 초반에 등장하는 인터뷰에서, ‘태윤의 장애가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아이들 대부분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죠. 또 후반부의 한 인터뷰에서 인터뷰이 학생이 ‘태윤이가 내 옷을 연필로 그어서 선생님께 이야기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학생에게 ‘왜 태윤이한테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까 ‘선생님께 말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라고 대답합니다.
이 두 장면으로 미루어 봤을 때, 통합학급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은 ‘함께’하지만 ‘함께’의 기본인 소통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통이 부재한 통합학급,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경민
통합학급에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하나’라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사이에 교사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고요. 장애 특성상 자폐성 장애가 유난히 그래요. 자폐성 장애 학생의 관점에서 생각해줘야 하거든요. 장애가 있는 학생의 행동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비장애 학생들에게 그 수준까지 요구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해요. 태윤이가 연필로 옷을 더럽혀서 선생님께 말했다는 그 친구도 이해돼요. 태윤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알려주기도 굉장히 어렵거든요. 하지 말라는 말뜻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도 알기 힘들고요. 소통이 원활하게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척 힘들어요. 장애 정도에 따라 소통이 잘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태윤이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비장애 학생들과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모더
그런가 하면 태윤이와 다른 학생들끼리 생각보다 소통이 잘 된다고 느꼈던 장면들도 있어요. 태윤이에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색종이 가지고 노는 게 좋다고 대답하고, 반 친구 중 누가 좋냐고 물었을 때 학생 두 명을 꼽는 모습들이요.
김진유
김경민 감독님이 그런 장면을 골라서 편집하신 건 아니죠(웃음)?
김경민
그게(웃음), 의외로 소통이 잘 되는 지점이 있어요. 태윤이는 되게 단순하게, 심플하게 살거든요. 몇 개에만 관심을 두고 나머지에는 무관심해요. 그 무관심한 부분에 관해서 뭔가를 이해시키려고 할 때 어려움이 있어요. 본인에 관해서 물어볼 땐 대답을 잘하는데, 본인이 관심 없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누군가가 개입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아까 친구 옷에 낙서한 것도, 옷이 더러워지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 태윤이는 재밌어서 그런 것이거든요. 하지만 친구는 옷이 더러워져서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는 걸 누군가는 태윤이에게 설명해야 하는 게 어려운 거예요. 태윤이의 세계는 누군가 개입해서 이해시켜줘야만 하는 상태인 거죠. ‘내가 이렇게 하면 친구가 불쾌해하겠지’라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요. 그런 태윤이를 이해하는 게 중학교 3학년 남학생에겐 무리죠. 소통이 잘되는 지점들이 영화에 나오긴 했지만, 어려운 지점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요.
모더
다음으로 <높이뛰기>의 소통에 관해 이야기해볼게요. 영화에서 후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사랑이 느껴져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마 어머니가 계속해서 보여준 스킨십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후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 후와 어머니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이런 장면들을 연출하실 때 특별히 배우들에게 요구했던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유
특별히 없었어요. 기억나는 건, 어머니 역의 이상희 배우가 <높이뛰기> 촬영 전 제 어머니와 만났는데, 그때 어머니 역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힌트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희 배우가 ‘감독님 어머니 모습대로 연기해야겠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게 더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떤 행동엔 무언의 메시지 같은 것들이 담기잖아요. ‘엄마는 이래야 해’ 같은 특별한 요구를 하진 않았어요.
모더
소통할 때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비언어적인 요소도 활용하잖아요. 어느 통계에 따르면 사람의 소통 방식에서 언어적인 소통의 비중은 10% 정도이고 나머지는 말투나 억양, 몸짓, 손짓 같은 비언어적 소통이 차지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비언어적 소통 방식이 영화에 활용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김진유
제 부모님은 청각 장애가 있으신데 두 분 다 정식으로 수어를 배우진 않았어요. 살아오면서 서로 약속하거나 자주 쓰는 제스처들로 대화를 나누거든요. 이런 걸 ‘홈 사인(home sign)’이라고 하더라고요. 문자 그대로 집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도 있고요. 저도 제스처로 부모님과 대화하고, 또 제스처로 나누는 대화를 좋아해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든 것 같아요. 제스처로 대화하는 방식은 문법화할 수 없죠. 청각장애인들은 서로 대화할 때 눈으로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비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잖아요. 동공이 흔들리는지 아닌지를 보고 의심하기도 하고, 믿기도 하죠. 청각장애인에겐 상대와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대화 방식이에요. 이런 걸 보면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도 행동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모더
마지막으로 무비토크에 참여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진유
씨네마실이란 상영회가 강릉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 같은데, 이런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돼 아쉽지만, 다음엔 오프라인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 더 많은 질문과 감상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릉에서 영화를 만들고 소개할 기회가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요.
김경민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제 영화를 보여주게 될지 몰랐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께만 영화를 보여주고 끝일 줄 알았거든요. 저도 많은 관객에게 제가 만든 영화를 보여줄 기회를 만나 뿌듯해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나아가 씨네마실 상영회를 계기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게 되고,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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