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초행길ㅣ남궁연이ㅣ13분5초ㅣ2020ㅣ단편 극영화
늙어가는 길ㅣ허장휘ㅣ18분1초ㅣ2019ㅣ단편 다큐멘터리
지금 우리, 다음에는ㅣ박정배ㅣ2019ㅣ단편 다큐멘터리
일시 : 2020.10.28 (수) 19시
모더레이터 : 김기수 지음 회원
녹취 :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
장소 : 고래책방
김기수(이하 ‘모더’)
안녕하세요. 오늘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기수입니다. 감독님들 소개로 무비토크를 열어볼게요.
허장휘
<늙어가는 길>을 만든 허장휘입니다. 현재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최순희
<늙어가는 길>의 주인공 최순희입니다. 올해 74살이고, 시 낭송가입니다.
박정배
<지금 우리, 다음에는>을 만든, 강릉살이 4년 차 박정배입니다.
남궁연이
<초행길>을 연출한 남궁연이입니다.
모더
네, 모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무비토크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들께 드릴 공통 질문과 개별 질문이 준비돼 있는데요, 관객 여러분도 궁금한 점 있으시면 손을 들고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공통 질문부터 시작해볼게요. 세 편의 영화 제목들이 영화 내용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나면 ‘아, 그래서 이런 제목이 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뭔가 고민하거나 상상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딱 느껴졌습니다. 영화 제목을 짓는 데 숨겨진 이야기나, 다른 후보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늙어가는 길>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허장휘
<늙어가는 길>이란 제목은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영화 속 낭독되는 시의 제목이기도 해요. 사실 최순희 선생님이 촬영 중에 시를 읽다 오열을 하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요. 그런 장면들을 대표하는 의미로 영화 제목을 <늙어가는 길>이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모더
순희 선생님께서는 영화 제목이 <늙어가는 길>로 정해졌을 때 어떠셨어요?
최순희
허 감독님이 제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농담인 줄 알고 ‘제가 어떻게 다큐를 해요’,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제 인생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다큐에 담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제 건강 상태를 알고서 더 그런 제안을 하신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았고, 다큐에선 제가 연기를 할 필요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라서 해보기로 했어요.
어느 날 감독님과 제목을 어떻게 지을지 의논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시 제목도 좋잖아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시 제목을 생각해봤죠. 제가 법정스님의 ‘늙어가는 길’이란 시를 좋아해요. 다큐 만든 걸 보면서도 ‘아, 제목으로 ‘늙어가는 길’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둘이 합의해서 결정된 제목이에요.
모더
다음은 박정배 감독님께 <지금 우리, 다음에는>이란 제목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정배
제목은 기획 단계부터 결정한 상태였어요. 딱히 숨은 의미는 없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점점 더 제목이 좋아져서, 처음에 지은 제목 그대로 가야겠다 싶었죠.
모더
영화에서 박정배 감독님의 부인 혜숙 님도 중간중간 등장하시잖아요. 혜숙 님도 제목에 동의하셨나요?
박정배
어떻게 보면 제가 아내를 따라가는 것 같아요. 아내가 운영하는 서점 이름이 ‘한낮의 바다’인데, 어떤 문장에서 일부를 툭 따서 제목으로 잘 짓더라고요. 이런 것도 제가 많이 따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 있는 거죠(웃음).
모더
남궁연이 감독님의 <초행길> 제목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남궁연이
‘솔’이라는 아이가 초행길을 떠나는 내용이라서 제목을 <초행길>이라고 지었고요, 솔이가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의미도 담겨있어요. 게다가 솔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감정들을 계속 느낄 것 같았고, 그렇다면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지금 가는 길을 초행길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더
제목만으로도 세 영화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처음 가는 ‘초행길’, 길을 걸어가다가 고민하는 ‘지금 우리, 다음에는’, 그리고 계속 길을 걸어가면 ‘늙어가는 길’이 아닐까. 마치 3편의 영화가 우리 삶을 연결하는 느낌이네요.
이번엔 감독님 세 분께 각각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남궁연이 감독님께 여쭤볼게요. <초행길>의 주인공 솔이가 300원을 갚으려고 길을 나서잖아요. 과연 이게 순전히 연출일까, ‘300원’ 같은 디테일을 보면 감독님께서 직접 겪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이런 줄거리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솔이의 순수함에 감동했거든요(웃음).
남궁연이
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예요. 제 경험과 솔이의 이야기의 결말은 서로 달라요. 초등학생 때 저도 솔이처럼 수영학원에 다녔고, 거기서 만난 친구에게 돈을 빌렸어요. 그런데 그 돈을 돌려주지 못한 채로 개학을 했고 다시 그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일이 죄책감으로 남아있었지만, 그 애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어른이 돼서도 그 일이 문득문득 떠올랐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으러 가는 솔이를 통해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죄책감을 좀 덜어내 보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더
그렇다면, 해피엔딩, 솔이가 친구를 만나서 돈을 갚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돈을 갚지 못한 채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궁연이
처음에는 솔이가 친구에게 돈을 돌려주는 해피엔딩으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주변에서 ‘근데 솔이가 꼭 돈을 돌려줘야만 할까? 솔이가 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실수를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한 게 중요한 것 아닐까? 돈을 돌려주고 말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어요. 그리고 고민 끝에 결말을 바꾸게 되었죠. 마음은 너무 아프지만요(웃음).
모더
저는 지금 사천면 운양초등학교 1학년, 8살 꼬맹이들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아이들을 보면, 하루 하루가 도전인 거예요. 수학 문제 풀기부터 포켓몬스터 카드 배틀 하는 것까지 전부 다요(웃음). 제가 학교에서 자주 보게 되는, 아이들이 도전하는 모습을 학교에서 사람들이 <초행길>의 솔이를 통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은 박정배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하신 지 올해로 4년째인데, 이주 결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요. 그런데 영화는 강릉으로 이주한 다음의 이야기잖아요. 영화 초반에 이주 결정과 관련해서 대화 몇 마디가 등장하긴 하는데, 저는 이주를 결정하는 과정 이야기도 궁금하더라고요.
박정배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사실 이주나 정착에 대해 깊이 파고들 생각이 없었어요. 어떤 시기에 느끼는 해소되지 않는 불안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죠. 우연히 생활의 장소를 바꾸게 됐고,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래서 여태까지 해오던 것들이 쓸모없게 느껴질 때, 무력감을 느낄 때 -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이주 과정에 대해서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싶네요. 어쩌다 강릉으로 이주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익어가다가 ‘아, 서울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자’, 이렇게 마음 먹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건 딱 이 정도입니다. 그다음엔 뭐, 뻔하죠. 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강릉을 오가고, 집을 구해 계약 시기에 맞춰 이주하고 …
모더
저도 30대에 접어들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드는 거예요. 20대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에요. 20대 때는 뭐랄까, 앞으로 계속 달려나가는 느낌이었는데 30대에 들어서니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왜 불안할까’하고 생각해보니까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스스로 세운 잣대로 자신을 외부와 비교하게 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감독님은 어떠셨나요? 서울에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신 적은 없었나요?
박정배
서울에선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좋았어요. 재밌었죠(웃음). 제가 좀 링 위에서 싸우는 파이터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링 위에 올라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싸움 붙여주면 상대를 이기고 말겠다는 마음가짐 같은 게 있었죠. 엄청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타이틀을 쟁취했을 때 이걸 자랑할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어요. 또 자랑을 해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형식적인 관계들이 생기더라고요. 반대로 친구들은 저와 자기들을 비교하기 시작하고요.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서울 생활에) 질렸던 것 같아요. 관계가 비즈니스적으로 변하는구나, 싶었어요.
모더
확 와 닿는 이야기, 감사합니다(웃음). 저도 줄곧 인천, 경기도권에서 살았는데 박정배 감독님과 비슷한 것들을 느꼈던 것 같아요.
최순희
아휴, 강릉에 잘 오셨어요(웃음).
모더
엇, 강릉에 잘 온 건가요? 강릉 자랑 좀 해주세요.
최순희
강릉엔 산도 있고, 바다도 있잖아요. 그리고 강릉 사람들이, 말투는 무뚝뚝해도 굉장히 온순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강릉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근데 제 시야가 좁을 수도 있는 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강릉에서만 살아봤거든요. 그래도 강릉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잘 오셨어요.
관객 1
박정배 감독님께 여쭤볼게요. 왜 하필 강릉으로 오셨는지 궁금해요.
박정배
우선 느낌이 좋은 동네, 한적한 동네가 1순위였는데, 그런 곳을 찾아서 이사하면 꼭 동네가 뜨더라고요. 이태원, 한남동, 연희동, 홍대 - 다 살아봤지만, 조용한 곳이어서 이사했다가 동네가 뜨면서 시끄러워져 떠나고 - 이런 걸 반복했죠. 근데 강릉도 점점 뜨고 있잖아요. 고성으로 가야 하나(웃음).
모더
다음은 허장휘 감독님께 질문해보겠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건데, 최순희 선생님과 어떻게 만나서 다큐를 만들게 되셨나요? 사실 가족을 제외하면 비슷한 연령대가 아닌 사람을 만나기 힘들잖아요.
허장휘
강릉에선 시 낭송회가 자주 열려요. 다들 잘 모르시는데, 전국에서 시 낭송회 가장 많이 열리는 곳이 강릉일 거예요. 그 정도로 많습니다. 근데 순희 선생님이 시 낭송 분야 베테랑이세요.
한 번은, 선생님께서 시 낭송 녹음을 하러 제가 일하는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에 오셨어요. 그땐 좀 무뚝뚝하셔서, 저랑 싸우러 오신 줄 알았어요(웃음). 그렇게 처음 인연을 맺은 뒤로 자주 뵙다 보니 속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러다가 순희 선생님이 미디어센터에서 팟캐스트를 진행하시게 됐어요. 그때 선생님께 센터에서 진행 중인 어르신 대상 미디어 활동들도 소개해드렸는데, 무척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매사에 참 열정적이신데, 이 매력에 퐁당 빠져서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말씀드렸던 거죠.
최순희
감독님을 제가 정말 잘 만났죠. 감독님이 제 능력을 알아본 거잖아요. 그렇죠(웃음)?
허장휘
그럼요, 제가 선생님 능력을 알아봤죠(웃음).
모더
사실 허장휘 감독님 첫인상이, 조금 까탈스러운 완벽주의자 같달까요. 순희 선생님은 허장휘 감독님의 첫인상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최순희
영상실에서 감독님이 걸어오던 게 기억나네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분도 저만큼이나 무뚝뚝한 거예요. 그런데 대화를 할수록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정도 많고요. 그리고 작업할 때 상대를 힘들게 만들지 않아요. 실수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새로 찍으면 돼요’, 이러면서 편하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궁합이 잘 맞았죠.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작품 활동도 많이 하고, 능력자시더라고요. 제가 참 좋은 분을 만난 거죠.
모더
정말 진심이 뚝뚝 묻어나요(웃음). 두 분이 서로 에너지를 많이 주고받으셨을 것 같아요. 저보다도 열정이 많은 최순희 선생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시를 낭송하는 선생님의 목소리, 템포 모두 정말 좋았어요. 괜찮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시 한 편 낭송해주실 수 있나요?
최순희
시는 어디서든 낭송할 수는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는 해 본 적이 없어서…. 제가 (배경 음악) CD를 갖고 오긴 했어요.
허장휘
완벽주의가 있으세요(웃음).
최순희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자리에서 그냥 일어서서 낭송하면 되나요?
모더
네, 여기 앞에서 해주시면 됩니다.
최순희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낙엽> 낭송)
(관객 박수) 감사합니다. 작은 퍼포먼스(스카프를 허공에 날리며)로 마무리할게요. 이런 자리에서 시를 낭송한 건 처음이었는데, 괜찮았나요?
모더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과 딱 잘 어울리는 시네요. 저는 낙엽 밟는 소리를 무척 좋아해요. 쌓인 눈 밟는 소리와 더불어서요. 지난번엔 아이들이 “선생님~ 이 소리 좀 들어보세요, 너무 좋아요!”라면서 낙엽을 밟는 거예요. 선생님의 시 낭송을 들으니 그 모습이 떠오르네요. 관객 여러분들도 돌아가시는 길에 낙엽을 밟으면 가지 않을까(웃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번엔 남궁연이 감독님께 여쭤볼게요. 저는 솔이를 보면서 솔이의 죄책감이나 친구에게 갚지 못한 300원을 주제로 후속편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차기작 계획은 없으신지요?
남궁연이
차기작 계획은 없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 한 달 정도 계단으로 다녀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한 번은 계단을 오르는데 층마다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나 같은 동 사는 사람들도 자주 마주쳤고요. 아파트라는 공간이 어떻게 보면 소통이 단절된 곳이잖아요. 계단은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이 스칠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아파트 계단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허장휘
아이디어 좋다. 부럽네요. 남궁 감독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제가 사는 동은 아직 엘리베이터 수리를 안 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은 못 했네요.
모더
다음 작품도 이렇게 무비 토크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다시 박정배 감독님께 질문할게요. 요즘 강릉살이는 어떠신가요? 혹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으신지요?
박정배
무척 돌아가고 싶죠 - 장난입니다(웃음). 다시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일 때문에 서울을 자주 가는데,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다못해 이케아라도 들려서 쇼핑을 하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이 끝나면 바로 강릉으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서울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지만, 가끔 강릉에 있어서 정체됐다는 느낌은 들어요. 클라이언트가 요청하는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게 제 업(業)이다 보니 뭘 많이 보고 느껴야 하는데, 인터넷으로만 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잘 브랜딩 된 공간에 직접 가서 공간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느끼고, 보고, 배워야 하는데. 제가 게으른 게 문제겠죠(웃음).
최순희
어휴, 그럼 여기 오래는 못 있겠다(웃음).
박정배
지금 강릉도 점점 사람이 많아져서, 고성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강릉에 올 때는 이 지역에서 2018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KTX가 생기는 것도 몰랐어요. <지금 우리, 다음에는>을 만들기 시작했던 무렵엔 강릉이 진짜 좋았어요. 촬영하면서 강릉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니까, 더 좋아지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제가 알던 장소들이 많이 변했거든요. 아내도 서점에서 관광객들을 많이 상대하면서 점점 아쉬운 것이 많아지고요.
모더
이번엔 허장휘 감독님께 질문할게요. 이번 작품 외에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드셨는데요, 그 작품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허장휘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의 공동체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과 사진 책을 만드는 활동을 했어요. 이어서 부천시 상계동 어르신들하고도 비슷한 작업을 했고요. 대부분 지금 순희 선생님보다 연세가 많으세요.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지만 노후 준비도 안 된 막막한 상황이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어르신들의 삶을 사진과 이야기로 기록하는 걸 굉장히 고마워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죄송했죠.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것도 많아서 제게도 무척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지만 그 힘듦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온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아있는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고요.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보람을 느끼는 활동이에요.
최순희
제가 시력이 아주 나빠져서, 지금 앞에 계시는 관객분들 얼굴도 안 잘 보이거든요. 사람들이 앉아있는 형체만 보여요. 그래도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기를 받는 것 같아 좋아요. 제 또래 노인들은 다들 고생하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인생이란 게 고생을 해야 참맛을 알지, 고생 안 한 사람이 인생에 무슨 재미를 느끼겠나 싶어요.
제가 50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시어머니가 105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40년을 모셨어요. 종갓집이라 1년에 제사를 10번씩 지냈고요. 가세가 기울어서 아무것도 없는데도요. 그래도 아들 둘, 딸 하나 대학까지 다 보냈네요.
40년 세대 차이 나는 시어머니와 40년을 함께 사느라고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가끔 저 자신에게 말해요, ‘야, 최순희, 너 잘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 이렇게 스스로를 ‘업(up)’ 시켜요. 지나간 슬픈 일, 힘든 일 안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시 낭송가가 된 건 2009년이에요. 시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때였고, 남편은 지병으로 앓아누워 있었고요. 그래도 시 낭송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열심이었어요. 그러나 2015년에 강릉 노인대학에 입학했어요. 여기서 시 낭송을 많이 했어요. 입학식, 졸업식, 발표회 … 제가 활동하는 낭송회엔 70대부터 80대까지 노인들이 주로 들어오는데 시 낭송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오세요. 앞서 모더레이터 남이 ‘아이들은 매일 도전한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많아도 도전할 수 있어요. 다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86세 회원이 저한테 “나는 왜 맨날 짧은 시만 가르쳐주느냐”고 화를 내시더라고요(웃음).
시 낭송으로 팟캐스트랑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어요. 만든 걸 가족들한테 보내면 애들이 “우리 엄마가 이 나이에 시를 왼다니 대단하다”면서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손주들도 “우리 할머니 멋지다!”하고요. 저는 시를 다 외워서 낭송하거든요.
모더
오늘 최순희 선생님을 처음 뵀어요. 제가 “안녕하세요. 할머님”이라고 인사했다가 혼났잖아요. 선생님더러 ‘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 아무도 없다면서요(웃음). 나이보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오늘 나눈 이야기에서 ‘도전’, ‘불안’, ‘죄책감’ 같은 키워드가 나왔는데, 모두 우리 삶에 녹아있는 것들이죠. 그 와중에도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게 우리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근무하는 운양초등학교가 추구하는 어린이의 모습은 ‘오늘이 행복한 어린이’예요. 사실 초등학생들도 오늘 없이 내일을 위해 살거든요. 이제 8살인데 벌써 20살 대학생이 됐을 때를 생각하면서 공부하고, 서로 경쟁도 하고요(웃음). 그럼에도 오늘이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면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영화들이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삶의 키워드를 다시 꺼내 보게 해준 것 같아 감독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관객석에서 질문을 받아볼게요.
관객 2
남궁연이 감독님께 질문할게요. 영화에서 솔이가 가는 길을 계속 보여주잖아요. 그 길이 솔이에게는 초행길이었지만, 관객들은 그냥 ‘아이가 길을 걸어가고 있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솔이에게 초행길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잘 모르고요. 솔이가 가는 길이 ‘초행길’이란 걸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성한 장면이 있는지, 혹은 생각했던 대로 표현되지 않은 장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궁연이
솔이에게 이 길이 초행길이라는 걸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지도’였어요. 솔이가 지도를 받기 전까지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암초등학교가 어느 부근에 있는지만 확인하고 다리를 건너거든요. 그런데 다리를 건너서 지도를 그려주는 아저씨를 만나고, 아저씨가 공책에 그려준 지도를 보면서 길을 계속 가죠.
또 차가 지나가는 장면에서 솔이가 낯선 길을 가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영화를 준비하며 참고가 될 영화들을 여럿 찾아봤는데,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서 평생을 보낸 노인이 출소해서 시내를 걷는 장면이 있었어요. 시내를 굉장히 낯설어 보이게 촬영했더라고요. 그 장면과 최대한 비슷하게 찍었습니다(웃음).
관객 3
박정배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강릉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을 같이할 수 있는 팁이랄까요. 또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박정배
재주가 없는 분들은 오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도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주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회사나 단체에 소속돼 일했던 사람들, 수동적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친구 몇 명 있다고 해도, 결국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진 않거든요. 저희도 아무 연고 없이 강릉에 왔어요. 원래 친구가 있었는데 저희 부부가 강릉에 오고 한 달 뒤에 스리랑카에 이민 갔어요(웃음). 왠지 그럴 것 같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일단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건, 그 아이에게도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계속 바뀌니까요. 앞서 고성으로 갈 수도 있다고 얘기를 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사그라지면 해외로 나갈 수도 있겠죠. 마주한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셨던 것처럼 아내가 지금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 언제까지 할 지 모르는 거죠.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고 봐요.
모더
‘한낮의 바다’는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웃음).
박정배
저희 부부는 마음이 떠나면 그냥 바로 놓아버리거든요. 하지 않는 거죠. 아까워도 바로바로 놓아요. 그런 걸 저희는 정말 잘해요. 싫으면 안 하는 거요.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삽니다(웃음).
관객 4
최순희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나이 들었을 때를 상상하게 됐고, 저희 부모님 입장도 생각해보고, 양로원에 계신 외할아버지도 생각했어요. 부모님이나 외할아버지는 딱히 취미가 없으신데, 선생님께서는 원래 시를 좋아하셨나요?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며 삶이 행복해지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최순희
학교 다닐 때부터 시를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시인으로 등단하진 못했어요. 사는 게 바빠서 그랬죠. 시를 외우기도 남편을 데리고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가며 많이 했죠. 그럼 병원에 금방 도착하더라고요. 위로도 되고요.
모더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요? 소감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허장휘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제가 말주변이 없어요. 그래서 메모를 해왔는데 보고 읽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앞을 보고 말하겠습니다. 다른 자리에서 최순희 선생님께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어요. 현재, 지금 이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거든요. 이런 처음의 경험들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뒤를 돌아보면 ‘아, 내가 이런 일을 했구나’하면서, 제 삶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가 둘 있는데, 둘 다 앞을 바라볼 틈도 없이 굉장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을 너무 힘들게 살지 말고 순간순간 즐기면서 좀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순희
제가 이런 데에 와도 되나 싶었는데, 우리 허 감독님 덕에 노인영화제도 그렇고,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그렇고 참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합니다. 인생이, 나이를 먹어도 살 만하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 참 감사합니다.
박정배
의도치 않게 말이 많았습니다. 이주와 정착 전문가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절대 그렇지 않고요. 아직도 매일매일 시행착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금 상황에서 느끼는 것들을 말씀드린 거고, 내일은 또 답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사실 오늘 영화 상영 순서에 불만이 많은데요, 어린이의 순수한 고민을 담은 <초행길>과 노인의 본질적 고민을 담은 <늙어가는 길> 사이에 쓰잘데기 없는 제 다큐가 상영돼서... 굉장한 불만입니다(웃음). 부족한 아마추어의 실력으로 만든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관계자분들께도 감사 인사 전합니다.
남궁연이
오늘 상영회부터 무비 토크까지 긴 시간 자리를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저는 이렇게 세 영화가 같이 묶여서 상영된 게 참 좋았어요. 앞서 모더레이터 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어렸을 때, 어른이 되었을 때, 늙어갈 때, 이렇게 삶의 여정을 따라 영화가 이어지는 느낌이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제가 <초행길>화 함께 상영된 두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세 작품이 함께 소개돼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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