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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영화 리뷰] 티켓

태영 씨, 어디 가요?(이혜리)

김태영 <티켓>


강릉에 사는 기아 타이거즈 팬 태영 씨는 경기를 보러 광주 구장에 가기로 한다. 친구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몇 시간 걸리는지 알기나 하느냐부터, 그냥 TV로 보지, 각오가 서면 가는 거고 안 되면 포기하라는 으름장까지, 가지 않는 게 더 좋은 오만가지 이유를 댄다. 표정에는 근심 한 가득, 잘 다녀오라는 말 한 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태영 씨가 지체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걱정은 진심이다. 표를 끊는 것부터 버스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는 일, 휴게소에서는 어떻게 시간 안에 화장실을 다녀올 것이며, 도착해서 경기장까지는 어떻게 갈 것인가.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을 되짚어 강릉까지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태영 씨는 실제로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씻고, 먹고, 생활한다. 혼자 일상을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인식과 주관이 또렷하다. 혼자 챙길 수 있는 삶의 영역이 좁지 않다. 그래서 관객은 헷갈린다. 태영 씨를 응원할까, 걱정할까.

그럴 즈음 영화는 광주행 표끊기에 나선 태영 씨의 리얼타임을 관객 앞에 펼쳐 놓는다. 이 장면을 보기 전에는 막연히 표끊기의 과정 자체가 지난할 거라 생각했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텐데 휴대폰으로 필담을 하게 되려나? 실제상황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불안하게 시작된 표끊기가 생각보다 쉽게 끝나는 대신, 발급받은 표와 결제에 사용한 카드를 가방에 도로 넣는 일이 복병이다.

카메라는 거리를 둔 채 5분 넘게 태영 씨의 고군분투를 지켜본다. 정확히 무엇이 그를 창구 앞에만 머물게 하는지 다가가서 보여주지 않고, 태영 씨를 둘러싼 터미널의 풍경을 담는다. 주위 사람들이 유연한 대화와 간결한 움직임으로 용무를 마치고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태영 씨는 창구 앞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 초반에는 들리지 않던, 그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조각들이 온통 마음을 뒤흔든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듯 거친 숨소리, 무선마이크가 가방에 닿아 내는 마찰음 같은 것들. 마침내 돌아나오는 태영 씨의 표정은 뿌듯함인지 담담함인지 선뜻 읽히지 않는다.

비장애인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는 버스 여행의 모든 단계를 어렵사리 버티고 견뎌 구장 입성에 성공한 태영 씨. 영화는 거기서 멈춘다. 경기장의 분위기를 사운드로 전할 뿐 태영 씨의 얼굴 따윈 보여주지 않는다. 기분 좋게 맥주 한 모금 하고 있을 태영 씨를 상상하며 슬며시 웃다가 그만 멈추고 말았다. 태영 씨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광주행의 성공은 그를 또다른 여행으로 이끌게 될까, 아니면 또다른 태영 씨를 진심으로 만류할 근거로 남게 될까. 


비장애인 관객 입장에서 <티켓>이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영화인 까닭은, 당연한 것조차 큰맘 먹고 도전해야 겨우 누릴 수 있는 태영 씨의 여정을 보여줌에 있어 그의 감정과 반응을 중심에 두기보다 세상과의 관계를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모습, 터미널에서의 풍경,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의 냉대와 환대. 그 어딘가에 나도 존재할 텐데,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해야 태영 씨의 다음 여행이 빠른 시일 내에 시작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어디론가 향하는 태영 씨를 터미널에서 마주치고 싶다.



2020 생활문화활성화지원사업 씨네마실 '지역영화로 영화글쓰기'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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